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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당신이 옳다/서평

by 슬기맘오똑이 2022.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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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아지고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날.

2023년을 향해 흘러가는 나의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1월부터 514 챌린지를 시작하였고 쉼 없는 공부와 책을 새롭게 만났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보였어요.

3월 쉼 해요 독서 모임에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나 자신에 자신이 없었고 삶의 의미가 무얼까 방황하고 있던 때

'당신이 옳다'라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나에게 건네주는 정혜신 작가님의 말에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거예요?'

만성적인 '나'기근과 관계의 갈등에 시달리는 우리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나를 구하고 너를 돕고 싶은 이에게 전하는 결정적 위로와 세심하고 과감한 지지!

사람을 살리는 강력한 힘!

치유자 정혜신이 전하는 공감의 모든 것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스부호 같은 급전이다. '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p39)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들어내는 사람에게 끌립니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나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순간입니다. 가수들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우리가 환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기대를 위해 나를 끊임없이 지워가고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나를 내려놓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임감, 무게감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착한 딸, 남편에게는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 하느라 내가 없는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누구이지?'라는 생각에 멈춰 섰습니다.

누구든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하다고 합니다.

삶의 끝자락에 기진맥진하여 주저앉기 전에 나를 찾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 또 없다.(p53)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기가 엄마 앞으로 먼저 뛰어가다가 뒤를 돌아봅니다. '엄마 여기로 가는 것이 맞지요?.라고 묻는 것처럼 엄마를 쳐다봅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면 뒤돌아서 신나게 달려갑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다음에 대한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안 좋은 상황에 있을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이유는 조언을 듣기 위해서 아니라 '나의 상태'를 공감하고 ' 그럴 수도 있지. 너니까 잘해온 거야'라는 공감의 말을 듣기 위함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다음 어떤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됩니다. 따듯한 공감. '네가 옳아'라는 말을 듣기 위함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강력하고 힘이 있는 말 '네가 옳다'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말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죽고 싶어,,,,,'

'그런 마음까지 드는구나. 언제부터 그랬는데?'

'잘 모르겠어. 오래된 것 같아. 요즘엔 더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 것 같아'

'그렇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아팠구나. 그런데 어떻게 견뎠니?

'멍 때리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러면 좋아졌어?'

"그때 일 뿐. 그리고 지면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79)

직장 생활이든, 부자든, 빈 자든 모든 사람은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는 경험이 적으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충전기를 한 번도 만나적이 없는 배터리처럼 자연히 방전되고 맙니다.

어떠 고통을 당한 사람에게라도 그 고통스러운 마음에 눈을 맞추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피하지 않고 물어봐 주고 그것을 들으면서 이해하고, 이해되는 만큼만 공감해 줄 수 있다면 가장 도움이 됩니다.

아픔에 대해 물어봐 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의 근원을 스스로 이야기하면서 찾고 그 해결 방안도 찾아가게 합니다. 나에 대해 물어봐 주는 것 자체가 바로 치유가 되는 순간입니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는 순간에 내가 왜 속상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전환하여서 생각하면서 속상한 마음이 풀리곤 합니다.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치유와 위안을 줍니다.

 
 

문이 '존재 자체' 라면 문고리는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이다. '존재의 감정이나 느낌'에 정학하게 눈을 포개고 공감할 때 사람의 속마음은 결정적으로 열립니다. 공감은 그 문고리를 돌리는 힘입니다(p171)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디디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마음이 닿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마음이 닿는 길은 비탈길일 수도 오르막이기도 하고 내리막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길을 내가 뚜벅 투박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온 마음을 내어야 가능합니다.

깊이깊이 들어가야 전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공감을 할 수가 있습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은 큰 선물입니다. 나 또한 내가 먼저 깊이 공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라는 자기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어야 공 감자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를 동시에 공감하는 일은

양립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나와 너 모두에 대한 공감'의 줄임말이 '공감'이다.(p194)

'사이'는 너와 나 사이의 빈칸에 있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오지 말고 이 빈칸에서 만나자. 한가운데, 그 사이에서 만나려면 힘이 든다. 너도 나도 아닌 그 상이에 네가 있고 내가 있다 (눈물 한 방울)

이어령 선생님의 눈물 한 방울에 있는 글입니다.

사이. 경계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해. 무조건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상해서 하나를 받으며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2개를 받고 싶은 욕심이 생겨납니다.

그 욕심이 서로에게 나중에는 상처로 남게 됩니다.

손잡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더 오래 사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며 더 오래 서로에게 웃을 수 있습니다

 
 

역할에 충실한 관계란

'모름지기 주부란, 아내란, 엄마란, 며느리란 이러이러해야 한다

모름지기 가장이란, 가짜란, 아들이란, 사위란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집단 사고에 충실한 삶입니다

역할 놀이 중인 삶입니다.

이런 삶, 이런 관계 속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 심리적 s라인이 드러나지 않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면서 한 번도 속살을 보지 않은 삶입니다(p259)

너무 역할 놀이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면 나의 빈자리가 너무 커집니다.

역할 놀이 중에 나의 시간과 나를 배치하는 공간을 두어야겠습니다.

나부터 내가 공감해 주어야 다른 사람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나로 살아갈 때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아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사람이나 낯선 상황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 놓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이다(p313)

공감이 그렇다고 합니다. 숨 막히는 공감에서 옴짝 달짝할 수 없는 순간이더라도 한순간에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공감은 갯벌로 자꾸 빨려 들어가는 나를 꺼내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감의 힘을 나의 경험과 정성을 다해 펼치는 것은 내가 공감을 받고 치유를 하는 순간입니다.

공감으로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며 함께 살아가도록 펼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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