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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y 슬기맘오똑이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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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프롤로그>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의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 다시 리스크 인터뷰

(어둠과의 팔씨름)

컵이 깨지면 차갑고 뜨겁던 물은 다 사라지지, 컵도 원래는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에 있던 컵 안의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거라네. 알겠나?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 마음을 비워서 더 영혼의 본질과 대면하면서 더 넓은 세상과 소통을 하라는 말씀이다.

나 음량을 줄이고 그 빈 공간에 영혼을 채우라는 말씀이다.

내 마음의 양을 줄이면 가벼워지겠다. 그런 간단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자꾸 채우려고 한다.

욕심, 관심, 집착, 애증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겠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

- 의문이 생겨도 의문을 질문으로 꺼내어 표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반기를 드는 일이니까요

용기를 내서 의문을 제기해야 하네, 간곡히 당부하네만

그대에게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 -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모습을 알고 이야기를 하신 것 같아 당황했다.

어떠한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나는 내 의견보다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 결정을 했다.

자기 결정권이 약하다. 아니 용기가 없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지나고 나면 "이렇게 이야기라도 해볼걸" 하는 후회를 반복하는 것은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틀렸다고 하면 어쩌나, 거절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으로 배려라는 가면을 택했던 것이다.

이제는 용기를 내보자.

거절되더라도 질문하고 반문하여 내가 선택을 해야지.

혹시 그 결과가 틀렸어도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받아들이고 경험을 해보자.

용기를 내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있다)

생명의 중심은 비어 있지.

다른 기관은 바쁘게 일하지만 오직 배꼽만이 태연하게 비어 있어, 비어서 웃고 있지

몸의 중심으로 엄마와 아기가 하나로 묶여있다는 유일한 흔적이고 그것은 비워져 있다고 하셨다.

정말 배꼽은 움푹 들어가 비워져 있었다. 새로운 씨앗을 품기 위해 씨앗의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우는 것. 비워야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진리를

배꼽을 비유해서 말씀을 전하신 선생님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속에 진실이 있어,

경계할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라네.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은폐가 곧 거짓이야

 

이 글귀를 읽는 데 머리를 크게 한방 맞은 느낌이 들었다.

망각. 덮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무심하게

덮어버리고 잊어버렸다고 핑계를 되면서 회피했다.

진실과 마주 대할 자신이 없어서

진실의 아픔을 외면했던 모든 순간이 뇌리를 스쳐 가슴이 아프다.

덮어버린 진실에 아파했을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무수히 덮어버린 망각들이 움틀 거린다.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선생님! 일상에서 생각하는 자로 깨어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연습을 해야 합니까?"

"뜬소문에 속지 않는 연습을 하게나. 있지도 않은 것으로 만들어진

풍문의 세계에 속지 말고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

그게 싱킹만이야.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

세상의 존재하는 것들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질문을 할 때

말문이 막히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나의 고정된 관념이 확장된 사고를 하는 아이들의 질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고

내 안의 사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확장된 사고 아이처럼 생각해 보자.

처음 새로운 것을 경험한 것처럼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히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폭포수로 올라가지 않아도 모든 물결은

거슬러 올라가거나 원하는 데로 가지

떠내려간다면 사는 게 아니야

내가 처한 이 환경에서

그냥 떠밀려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역류하여 가고자 하는 물줄기를 찾을 것인지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은 컵이고 나는 나지,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지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인가? 나의 것일 가?

서로의 것이지

내가 없으면 우리가 없는 것이고 우리가 없으면 또한 나도 없다.

나와 너 사이 그 사이에 나도 있고 너도 있는 것-inter

(파뿌리의 지옥, 파뿌리의 천국)

 

목적이 있으면 걷는 게 되고 목적이 없으면 춤이 되는 거라네

걷는 것은 산문이고 춤추는 것은 시지.

인생을 춤으로 보면 자족할 수 있어.

목적이 자기 안에 있거든, 그게 춤이라네~

나의 파뿌리는 무엇일까?

내 파뿌리로 나는 지옥과 천국을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 바보의 쓸모)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꿈이라 걸 지속하는 거야.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나만의 유일한 꿈을 설계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꿈을 꾼다는 것은 설레는 하루를 나만의 색으로 채워 나가면서 지우고 다시 채워 나가는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 듣고 싶나?)

" 안긴 이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거라네

개인이 혼자 있는 것도 그렇게 힘든 거라네"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고통은 누구나 겪는 거다.

고통의 종류와 값이 다를 뿐

그 고통을 그대로 감당하는 것도 자신뿐이다.

누구나 내 고통의 무게만 느끼고 힘들어한다.

이어령 선생님은 그 고통을 바라보는 힘을 이야기하신다.

'나 아파. 나 힘들어' 객관화해서 나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자의식이고 자아라고 한다.

회 파하지 말고 나를 정확하게 직면하게 되면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고통의 승화를 만나고

다시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활이 되어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하셨다.

 

  .

( 눈 부신 하루)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그 말씀에 공감을 한다. 타인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을 받아들이고 행하는 것은 나이다.

내가 스스로 깨닫지 않고 만족하지 않으면 나는 바뀔 수가 없다,

나를 알고 나를 세우고 나를 걷게 하는 것은 나 자신뿐!

모든 것이 나의 에 달려 있다.

(지혜를 가진 죽는 자)

인간은 극과 극 사이의 인간이야. 물음표와 느낌표가 한 몸에 붙어 있어'

신과 생물의 중간자로 인간이 있기에, 인간은 슬픈 존재고 교만한 존재지.

양극을 갖고 있기에 모순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

물음표&느낌표, 슬픈 존재& 교만한 존재

뒤집으면 손바닥 바로 하면 손등, 하나의 손인데 두 면이 다르다.

종이 한 장도 뒷면, 앞면 같으면서 다르다.

살아가는 것이 그래서 고단하고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은 덜 고단할 것 같다. 그 뒤에는 안정이 있으니까

앞과 뒤는 한 몸.

기쁨과 슬픔도 한 몸

이제는 좀 더 삶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기쁨이 와도 슬픔이 와도 그때 바로 직면하고 호들갑도 떨지 않고 맞이하리라.

( 또 한 번의 여름 - 생육하고 번성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라

목적 같은 것 없어, 생명, 살아 잇는 것. 그게 이 세상이라네

눈물 나는 세상이라네

선생님의 말씀에서 숙연해졌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진심 어린 태도가 심금을 울리며

살아가는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주어진 하루하루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과 삶이 교차되는 소중한 하루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나를 반성하게 한다

( 작별 인사.)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촛불과 파도 앞에 서면 항상 삶과 죽음을 기억하게나. 수직의 중심점이 생이고 수평의 중심점이 죽음 아라는 것을"

생과 죽음의 문턱에서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목이 멘다.

병마에서 살고자 하는 아픔을 느끼며 감내하다가 죽음 앞에서 다시 초연한 모습을 하시고

그 아픔을 통찰하시고 승화하시는 선생님이 위대하고 거룩하시다.

나의 생이 경건하게 다가온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죽음을 맞이하며 삶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

내가 오늘 살아도 내일을 알 수 없다는 것

처절하고 아픈 진실이지만 사실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주셨다.

그래서 오늘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선물인지를 알게 해주셨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

소중히 여기며 잘 채워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선생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절절한 가슴으로 전하신 수업

깊은 감명을 받고 가슴에 새기면서 살아가야겠다.

잊어버리면 다시 꺼내어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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