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존재에게 올드걸의 시집 ] 슬픔과 다정함 사이 은유 작가의 이야기

글 쓰는 삶을 동경한다면 은유작가의 책을 안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은유작가는 글 쓰는 사람들의 글선생으로도 유명하다.
나도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책을 읽었고 이번에 세 번째 책으로 [올드걸의 시집] 책을 읽었다.
지인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 책이고 은유 작가의 담백하고 잔잔한 문체가 그리워 읽었다.
은유 작가는 늘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는 말하기 어려운 삶의 언어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는 여성의 고단한 일상을 천천히 펼쳐 보였다.
이번 책 [올드걸의 시집 ]은 그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다.
엄마로, 딸로, 아내로, 때로는 그냥 ‘나’로 살아온 시간을 시처럼 담아낸 산문집이다.
거창한 울림 대신, 조용히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들로 읽다 보면 어느새 나의 기억과 감정이 불쑥 떠오르고, 그때의 나를 조용히 안아주고 싶어진다. 잔잔하지만 오래 머무는 책이다. 책에 실린 시들과 은유 작가의 일상이야기에서 나의 추억을 만나고 현재의 고민을 함께 풀어보면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다정한 위로가 있었다.
모든 사랑이 남는 장사라고?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p50)
은유 작가의 (올드걸의 시집)에서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라는 니체의 말을 열렬히 지지한다고 썼다.
남녀의 사랑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에로스의 사랑이든 플라토닉 사랑이든,외사랑이든 모든 사람은 남는 장사라고 말한다.
아들이 가을에 결혼을 한다. 결혼하면 강원도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어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예쁜 며느리가 들어와서 좋지만 또 결혼하면 남의 자식이 된다는 말처럼 부모에서 독립하는 것이기에 서운한 마음도 있고 거리가 멀어져 벌써 그리움에 마음이 아련하다.
착한 아들이 결혼하더니 자기 색시밖에 모른다며,어떻게 키웠는데 라며 시어머니가 된 언니들이 말한다. 요즘 시절과 아들을 이해하지만 서운하고 씁쓸하며 슬프다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벌써 며느리를 질투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요즘, 남편은 딸 시집갈 때 서운해서 눈물바람이더니 아들과 떨어지는 것이 서운해 또 눈물 짓는다.
이렇게 애달고 그립고 주는 사랑이 자식사랑인데 그래도 삶의 의미를 주고 기쁨과 행복을 주고 부모가 되게 해 주었으니 정말 남는 장사가 맞다.
또 예쁜 2세가 태어나면 얼마나 큰 선물인가?
은유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의 자식사랑의 샘 공식을 하면서 서운한 마음을 추슬렀다.

나는 오해될 것이다. 너에게도
바람에게도
달력에게도.
나는 오해될 것이다. 아침 식탁에서
신호등 앞에서
기나긴 터널을 뚫고 지금 막 지상으로 나온 전철 안에서
결국 나는 나를 비켜갈 것이다
나는 오해될 것이다. 나는 오해될 것이다.-
몇 번을 읽었다.. 자꾸 읽었다. 무언가 목구멍에 훅 올라와 숨이 막히다. 눈이 화끈 거린다.
이장욱의 시 (오해)를 읽고 은유 작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묵묵한 살아냄보다 무구한 조작이 우세할수록 삶은 꼬인다는 것. 나는 오해될 것"이고 "결국 나 는 나를 비켜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삶은 명사로 고정하는 게 아니라 동사로 구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생을 오해받을지라도 순간의 진실을 추구하고,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며 살아갈 때만 아주 미미하게 조금씩, 삶은 변하는 거 같다. 살면서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들은 이름, 감각, 느낌. 음악. 이야기... 나에게 존재를 위해 금가루 뿌리는 일이란 음악이 내미는 손 잡는 것,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는 것, 느낌을 나누 는 것. 그리 호사 누리며 살기로 한다.'
작가의 글을 따라가면서 '이제는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지나간 일이다 ' 나를 다독였던 일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았구나. 여전히 아프고 쓰리고 쑥쑥 쑤시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오해받았다. 가끔 질투로, 시샘으로 불같이 화를 내고 또 어느 날은 세상의 모든 나긋나긋은 다 모인 듯 잘해주었다.
가족이니까, 그래도 사랑이라고 하니까, 마음이 아픈 사람이니까, 외로 위하니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그저 떨리는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오해)의 시처럼 내 행동이 어느 때는 진심이 아닌 오해로 남았다. 나도 그렇게 진심을 오해하는 일이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풀어지겠지 쉽게 생각했었다. 그렇게 상처를 덮어버렸다.
하지만 너무 쉬운 사람이 되어버린 게 문제였던가 오해의 둑이 넘쳐 나를 삼켜버렸다.
아뜩했다. 숨이 막혔다. 할 말을 잃었다. 심장은 활활 타올라 몸속을 탈출하려고 아우성쳤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작은 불씨가 큰 화마가 되듯이 처음에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아야 했었다. 그저 참고 이해하고 받아주면 나아지겠지 순응했던 나는 바보였다.
결혼과 함께 여자는 참는 것이 미덕이라 배웠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묵묵히 있었던 난 천하의 나쁜 년이 되어 바람을 피어 자식을 아프게 만들었다는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내가 왜?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생각한 것인가?
뒤통수를 맞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30여 년 삶이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떨어졌다.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했다.
나를 오해했다.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남의 사주를 봐주는 사람의 말을 듣고, 매일 얼굴 보며 가족이라 묶여 울고 웃던 30년 세월은 5만 원에 저 낭떠러지로 사라져 버렸다.
피가 철철 흐르고 마음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흩어졌다. 부정당하고 여기저기 찢긴 내 삶을 껴안고 울부짖었다.
은유 작가의 말처럼 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움직인다.
지나온 시간이 이어오듯 아픈 오늘도 또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생각했다.
아파보니 안다고 했던가 조각난 내 마음이 온전히 보였고 이제야 봐주는 미안함에 더 애처롭고 소중했다.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사랑할 것,
내가 나를 믿을 것, 세상 중심에, 심장의 정 가운데에 나를 놓았다.
또 누군가 나를 오해할지라도,.. 이제는 쉽게 부서지지 않을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명백하게 나를 들어낼 것이다.
은유 작가의 말처럼 누구에게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 이름, 감각, 느낌, 내 이야기 이제는 꼭 지켜낼 것이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함께 희미해진다
(p191)
책 속에 등장하는 ‘다정함의 세계’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
이 문장을 읽으며, 다정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다정함은 무엇인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해 보니 발이 녹고 온몸을 쏘가 녹여주던 순간이 많았다.
바쁜 일을 도와주려는 나에게 별로 할 일 없다며 피곤한데 쉬라고 하면서 나의 일까지 두말없이 하는 동생의 살뜰한 마음이 고마웠다. 지인은 병원에 정기검진을 하러 가는 날, 혼자 간다는 말에 '내가 같이 가 줄게. 혼자 가면 외롭잖아" 다정하게 동행해 주는 남편의 마음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아버지 병원 가시는 날에 동행하였는데 잠깐 벤치에 앉아있을 때 아빠가 집에서 준비해 온 사과즙을 건네주셨을 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사춘기 아이들과 친구같이 퇴근한 후 산책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생각난다고 말한다. 그 순간들은 모두 다정했다.
다정함은 거창하지 않다. 어떤 말 한마디, 눈길, 기억 속에 남은 한 장면이 다정함이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생각해 주고,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 그저 “혼자 가면 외롭잖아”라고 해주는 말에 녹아내리는 마음. 그런 다정함은 진심에서만 흘러나온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이런 다정함 속에서 또 웃고 다시 일어나며 몸을 움직인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된다면
은유작가의 ' 나의 쓸모없음을 사랑한다' 글이 내 마음을 꼭 집어냈다.
무엇이든 잘 할 수 었다고, 괜찮다고 너무 애쓰지 말라고, 초라하고 비굴하고 때로는 바보스러운 내 자신 그래도 그 자신을 사랑하라고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보낸다.
함께 읽은 지인이 글을 읽으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에 화가 났다고 했다. 왜 우리는 항상 누군가에게 쓸모 있어야 할까?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을까? 무엇이 되어야만 인정을 받는 것일까? 난 아무 것도 안되어도 그냥 내 삶을 잘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누가 뭐래도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이니까.
고다 아야의 [나무]책에서는 목재 업자들은 곧게 뻗은 나무는 좋은 나무이고 휘어진 나무는 나쁜 나무라고 분류 한다고 한다. 크고 굵은데 왜 나쁜 나무로 분류할까? “목재로서 가치가 없다고 나쁜 나무라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 살아오며 뒤틀리고 휘어졌다고 해서 그 나무가 가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똑같이 300년의 세월을 이기고 지켜왔는데 그 가치의 기준은 누가 정해놓은 것인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매끈하지 않은 삶, 실수투성이인 길 위에서도 우리는 존엄하다.
각자의 존엄한 본성을 깨닫고 발현하는 것이 바로 나로 사는 길이다.

나는 오늘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은유 작가의 문장 속엔 꾸밈이 없다. 그 담백함이 마음을 울린다.
나는 오늘도 오해될 수 있다. 다정함을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나는 오늘도 다정함을 믿는다.
지하철에서 건넨 홍삼 엑기스, 바쁜 와중에 챙겨준 식빵 한 조각, 무심한 듯 건넨 “누나 힘드니까 그냥 쉬어”라는 말.
그 모든 순간이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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