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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김훈 작가의 자전 에세이 [허송세월]당신의 삶을 뒤바꿀 한 문장

by 슬기맘오똑이 202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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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 작가의 자전 에세이 [허송세월] 당신의 삶을 뒤바꿀 한 문장

 
 


세월의 연륜일까 작가의 위상일까
휘감아치는 글이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책 제목부터 범성치 않다. '허송세월'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너는 왜 매일 이렇게 허송세월하고 있어?'라고 꾸짖는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빈 둥 빈 둥 허송세월만 보내네'라는 한탄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을 허송세월이라 칭하는데 제목으로 허송세월이라니 틀을 깨는 제목부터 글이 궁금해지게 한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고 마는 삶의 작은 소재로 인상적인 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삶을 관통하는 통찰에 닫힌 시야를 가지고 다 본다고 자만한 나를 꾸짖는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 자꾸 서성이며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들,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이고 그럼 내가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안다는 것이 아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멈춰 다시 읽어보고 읽어보며 작가의 사유의 영역을 훔쳐보게 된다.
이끌림이라고 할까 문장속으로 걸어가며 작가의 뒷모습을 따라가게 된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무한공간을 날아온 이 정보는 발신과 수신 사이에 시차가 없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사물화 되어 있고 사물화 된 만큼 허구로 느껴지지만 죽음은 확실히 배달되어 있고, 조위금을 기다린다는 은행계좌도 찍혀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의 관성적 질감은 희 미한데, 죽은 뒤의 시간의 낯섦은 경험되지 않았어도 뚜렷하다. 이 낯선 시간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평안이나 불안 같은 심정적 세계를 일체 떠난 적막이라면 더욱 좋을 터이다(p7)


모든 생물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다. 영혼 불멸은 없다. 그럼 죽고 나면 뭐가 남을까?  가족들의 기억속에, 비석에 적혀있는 한 줄 글로 세상에 머물다 갔다는 흔적을 남길뿐이다. 나는 죽었다는 것을 사후에 내가 알까?. 안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부고'라는 알림 문자의 글로 죽음을 생각해본다.
죽음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 '부고 '죽은 사람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위안일 것이다.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   나무장작에서 타고 남은 재를 보며 노작 가는 생각 했다.
저렇게 가볍게 죽음을 맞이해야겠다고, 죽음을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쓰다듬으면서 맞아들이자 소망한다고 하신다.
나도 노년을 쓰다듬으면서 죽음을 맞이하자 마음 먹지만 죽음이 내게 오면 정말 쓰다듬으며 맞이할지 의문이 든다.

살아생전에 미리 치르는 장례식이 영화에서 나왔다.  죽음을 준비하는 동안 내 삶을 정리하며 함께 지낸 인연을 맺은 이들과 즐거운 작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죽기 전에 이별 파티를 하면 더 좋겠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이 이 문장에서 생각이 난다.



 

이 사람아, 그걸 왜 못 끊어. 자네가 안 피 우면 되는 거야. 피우면 못 끊는 거고.(p22)


노스님의 간단한 진리이다. 이 단순함을 알면서 끊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이 참 많다.
그냥 안 하면 되는 것대 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이유를 찾으면서 행하지 않는 것인가?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운동을 해야 하는데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
공주를 해야 하는데

 과한 동작을 하면서 ㅇㅇ 해야 하는데 라는 개그맨이 모습이 생각난다.
우린 모두 변명의 이유를 찾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자 신을 정당화하는데 능력이 탁월하다.
일체 유심조.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지어낸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냥 마음먹자. 그 간단한 원리를 실행하자.

이 단순성을 터득하고, 그것을 단순한 언어로 표현하려면 맑고 힘센 마음의 자리에 도달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노스님은 쉬움으로 어려움을 격파하는 힘이 있었다

금연을 말씀하신 노스님의 단순하면서 강력한 메시지로 뉘우침과 각오, 실천을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본래 칸막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내 손으로 칸막이를 세워 놓고 말의 감옥 안에 스스로 갇혀서 그 안에서 말을 섬기면서 살아왔으니 불쌍하다. 나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저녁들은 뿌옇다.(p40)

 


세월의 연륜과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노작가의 말에 나는 더 작아져 땅을 기어가는 지렁이가 된다.
기어가면서 피부에 닿는 질감을 통해 기억하고 체득하며 땅을 기어서 풀숲으로 들어가고 산으로 갔다 깊은 뿌리를 따라 안으로 안으로 안식처를 찾는 나는 지렁이다.

나는 어떤 경계를 치고 있는 것일까?
늘 보아왔고 알고 있던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나의 한계를 파괴하며 새로운 모습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야.
더 깊게 더 넓게 때로는 더 자세히 봐야 해.
인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몸으로 체득하고 느껴봐라고 노작 가는 나에게 말하고 있다.




햇별은 신생화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별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p43)


햇볕은 바로 지금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었구나 다시 깨닫게 하는 문장이다.
이 이글이글 모두 불태울 것 같은 뜨거운 볕도 바로 오늘 여름의 빛이다. 어제, 내일, 모래, 똑같지 않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아니 자각하지 못했다니 참 혀 빠지게 살았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무엇이 중 헌 뒤 그렇게 햇볕 한 줌, 솔바람 한 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꼬 개탄하게 된다.
허송세월이 참 바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느림의 미학, 게으른 시간을 한량없이 즐기는 한 때를 만들자 생각한다.




 

꽃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의 운명을 펼쳐 보이려고 핀다. 꽃들의 운명은 언제나 완성되어 있고, 이것이 꽃들이 누리는 자유의 발현이다.(p83)

 


장미, 튤립, 국화, 백합, 수국, 히야신스, 제비꽃, 호박꽃 들꽃, 이름 모를 꽃 모두 다 모양과 색깔 잎의 수 등 다 다르다. 향기도 다르고 잎도 다르고 저마다의 고유성으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난다.
저 자신의 운명을 그저 펼쳐 보이는 것뿐이지 시기니 질투로 경쟁하며 피는 것이 아니다.
꽃이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더 낫다.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꽃이어서 언제나 기쁨과 아름다움을 발현하는 것 같다.
스스로 빛나는 꽃이 된다.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이어서, 여름 호수에 연꽃이 피는 사태는 언어로써 범접할 수 없었다(p128)

연꽃처럼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히는 나이고 싶다.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 나는 좀 더 자란 후에야 아버지의 말에 담긴 고통과 희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흐름을 잇대어 가면서 미래로 나아가 는 시간의 새로움을 말한 것이었다. 경험되지 않는 새로운 시간이 인간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고, 그 시간 위에서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삶을 쇄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아버지는 어린 아 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물은 미래로 향하는 시간이었다.(p92)

 


어린 아들에게 들려준 아버지의 가르침을 나이가 들어서 이해한 작가님은 세월 속에 숨어있는 질긴 생명력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무수한 생명의 입자들이 우리를 이끌고 희망을 심으면서 쌓인 흔적이 나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여름이 깊어 갈수록 매미의 울음소리는 더욱 치열하게 울부짖는다.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아 있는 인간의 몸속에서 '희망'을 확인하는 일은 그야말로 희망적이다. 아마도 이런 희망은 실핏줄이나 장기의 오지 속과 근육의 갈피마다 서식하는 생명 현상 그 자체인 것이어서, 사유나 증명의 대상이 아니라 다만 경험될 뿐이다. 몸의 희망을 몸으로 경험할 때, 우리는 육체성과 정신성의 간극을 넘어서는 행복을 느낀다.
나는 이런 행복을 '몸과 삶 사이의 직접성'이라고 이름 지으려 한다(p130)

 


허송세월 속 작가는 무엇을 피력한 것일까.
모든 문장이 수려하고 아름답다. 또한 진한 울림이 있어 가슴을 파고든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새로움의 충격으로 어질 하게 도 한다.

그 안의 흐름과 메시지를 담기에 한없이 부족하다.
다만 '몸과 삶 사이의 직접성'을 이 생에서 경험하고 싶다.
인식으로 형성화하지 말고 몸과 생의 만남에서 체득하여 땀으로 눈물로, 기쁨으로, 피부로 직접 느끼는 적극적, 주체적으로 살아가자 다짐한다.
살아있는 몸을 통해서 세계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똥바가지, 햇볕냄새, 숨구멍, 재, 제비, 조사, 먹거리, 아귀다툼, 대중식당, 주먹도끼, 주교님의 웃음 등 나의 주변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자.


 



김훈 작가님에게는 바람 냄새, 흙냄새가 난다.
온갖 세상구경하며 모든 향기를 담아내면서 자유롭게 날아가는 바람 냄새, 시큰하기도 하고 솔냄새도 나고 잔향이 머리를 날리게 한다.
대지의 근원 흙 모든 것을 품고 아우르는 흙
쓰다, 달다 말이 없는 흙에서 진한 오래된 된장 냄새가 난다.

나는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http://Athog.me/t7rghtryf3

 

허송세월 - 예스24

“중생의 어리석음은 한이 없는데, 나는 이 어리석음과 더불어 편안해지려 한다”‘생활의 정서’를 파고드는 김훈의 산문 미학삶의 어쩔 수 없는 비애와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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