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다 [스틸 엘리스]가 전하는 존재의 의미
스틸 앨리스" – 잊혀짐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
앨리스는 점점 사라져갑니다. 그녀가 쌓아온 기억,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하던 모든 것들이 조용히 흩어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바라봅니다. 무너지는 존재를 마주하는 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연휴를 맞아 소설책으로 [스틸 앨리스]를 읽었습니다. 하버드대 교수 앨리스는 강의 및 논문 발표, 유능하고 전망받는 엘리트 여성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생겨서 너무 바빠서, 갱년기 증상인가 생각하다가 매일 다니던 학교 길을 잃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혹시나 하는 불길한 예감을 빗나가지 않고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을 확진받으면서 이야기는 혼란 속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앨리스와 비슷한 연배이고, 알츠하이머라는 질환의 치명적인 증상을 알고 있기에 눈을 뗄 수 없이 읽었습니다. "나는 할 수 없어, 앨리스. 미안해. 네가 점점 사라지는 걸 지켜볼 수 없어." (p.340)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조여왔습니다. ‘잊혀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앨리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기억이 사라질 때, 존재는 어디로 가는가?
그녀는 많은 비눗방울들을 웬만큼 시야에 붙잡아둘 수는 있었지만 그것들은 너무 빨리 '펑!' 하고 터저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분명한 이유도 없이 터져서 망각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p340)
앨리스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명망 높은 교수였고, 촘촘한 논리로 세상을 분석하는 언어학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단어를 잃어가고, 집으로 가는 길을 헤매며, 가장 기본적인 일상조차 어려워집니다. TV를 켜는 법을 모른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 옷을 입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그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마저 흐려져 가는 그녀. "그녀는 한때 많은 비눗방울을 손에 담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은 너무도 빠르게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유 없이 터져버렸다." (p.340)
이 구절을 읽고 한참 동안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기억은 비눗방울과 같을까?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리 터져버리는 존재,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는 존재. 그렇다면 기억이 없는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요?
앨리스를 보면서 병을 앓기전의 앨리스도 앨리스이고 병이 진행 중인 순간도 앨리스는 맞는데 정말 맞는 것일까?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일까? 존재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깊은 사색에도 답을 쉽게 내릴 수 없습니다.
가족이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린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이 느낍니다. 닥터 수스(어린이 그림책 작 가로 유명한 미국의 영문학 박사-편집자 주)의 책에 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미친 인물처럼요. 우리는 몹시 외롭고 절망적입니다(p353)
앨리스는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갑니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은 그 순간을 함께 살아갑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혼란과 좌절, 그리고 두려움이 그녀의 가족을 휩싸고, 어떤 이들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며 떠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아 있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앨리스는 말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며 사는 것, 그게 살아간다는 거야." 가족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결국 서로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과 ‘함께했던 감정’을 끝까지 잊지 않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연로하신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담고 싶어서 사진으로 남깁니다. 그 순간의 사랑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사랑, 가족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남은 숙제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알츠하이머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최대한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p355)
스틸 앨리스는 단순히 알츠하이머를 다룬 소설이 아닙니다. 이 책은 ‘기억’과 ‘존재’,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기억을 잃어갈 것입니다. 그게 서서히 진행되는 알츠하이머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기억은 희미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앨리스는 마지막까지 세상의 일부로 남으려 노력합니다. 그녀는 단순히 ‘잊혀져 가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기억을 잃어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저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입니다. 감사합니다.(p357)
앨리스는 마지막까지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스스로를 받아들입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기억을 잃어도,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는 걸.
이 책을 덮고 나니,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고 있을까?’
혹시라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지막 장을 덮은 후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한마디 전해 보세요.
"나는 널 기억해. 그리고 사랑해."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는 곳이 낯설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렴풋해지고, 익숙했던 단어들이 입안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그리고 어느 날, 낯선 이를 마주하는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묻을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지?"
리사 제노바의 스틸 앨리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알츠하이머를 앓는 한 여성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기억을 잃고, 삶의 어떤 부분들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를 붙잡아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보다 더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그녀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가족에게 솔직하게 대화를 하였는가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시간 속에서도 가족의 사랑을 느끼며 남아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배웁니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안아주고 나 자신을 더 따듯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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